농민신문 - [전문가의 눈]
'과수 화상병 예방은 꽃가루부터' / 순천대학교 고영진 총장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미국에서 수입한 수분용 사과 꽃가루에서 과수 화상병균이 검출돼 전량 폐기했다고 지난달 7일 밝혔다. 수입 꽃가루에서 화상병균이 검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수입 꽃가루에서 과수 병원균이 검출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봄부터 제주도와 전남, 경남 남해안 지역에서 재배하는 참다래에 창궐해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궤양병균 Psa3의 전염경로는 뉴질랜드와 중국에서 수입한 오염된 꽃가루로 확인된 바 있다.
Psa3에 대한 검역은 이미 병이 퍼진 뒤인 2014년 12월부터 실시됐지만, 그나마도 대량으로 수입되는 꽃가루 중 시료 일부를 채취해 검사하기 때문에 검역을 통과한 모든 꽃가루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실제로 검역본부의 검역을 통과한 참다래 꽃가루 중에서 Psa3가 검출돼 물의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꽃가루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검역에 구멍이 뚫릴 수 있는 만큼 검역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더구나 수입 꽃가루에 의존하는 농가 중에는 발아율이 낮거나 여러 품종이 혼합된 불량 꽃가루로 인해 한해 농사를 망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어 꽃가루의 국산화가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다.
외국산 꽃가루에 의해 전염된 Psa3 피해를 경험한 참다래 재배농가들이 외국산을 대체하기 위해 자가채취용 수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2013년부터 시행하는 과수 인공수분용 꽃가루 채취단지 조성사업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산화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남지역에서 많은 자가채취용 참다래 수나무가 Psa3에 감염돼 궤양병의 확산을 초래했던 사례가 있어서다. 이미 국내에 정착한 화상병도 인공수분용 꽃가루가 감염되면 걷잡을 수 없도록 퍼질 수밖에 없다. 궤양병이나 화상병이 발생한 과수원에서 곤충이나 물리적 방법에 의한 확산범위는 특정할 수 있지만, 꽃가루에 의한 확산범위는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는 국경을 봉쇄하지 않더라도 전파자를 특정할 수 있다면 감염을 차단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경 검역 강화도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화상병이 발생한 과수원으로부터 주위 과수원으로 화상병이 확산하지 않도록 국내 방역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화상병이 국내에 정착한 이상 검역과 방역으로 화상병균을 완벽하게 박멸하기는 불가능하므로, 건전한 꽃가루를 생산하고 보급할 수 있는 생산단지를 확대해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울러 생산된 국산 꽃가루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화상병 예방책이다.
또 국립종자원에서 2013년부터 우수품종 육성 및 우량종자 보급을 촉진해 농업 생산성과 농민소득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시행하는 식물신품종 보호법에 꽃가루를 포함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고영진 (순천대 총장)
[기사원문]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PRO/322331/view